“너는 미국 사람이잖아.”
완전히 틀린 말이라고 전혀 할 수는 없다. 이 지난 3년 동안 자주 들었던 말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들었을 때마다 마음은 늘 착잡했다.
나는 2014년 8월 24일에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처음으로 모국을 방문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 인생 처음으로 장기적으로 한국에 머무를 수 있는 기회이었다. 사랑스러운 친할머니와 큰 고모가 공항에서 나를 반갑게 마중 나와 주셨던 기억이 오늘까지도 생생하다. 한국 도착 바로 다음 날 연세대학교에서 나의 한국 생활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나는 거의 평생을 해외에서 자라면서 한국 문화나 한국 사람에 대해 궁금했던 것 들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기시작했다. 원래 아버지가 석사까지 공부하신 연대에서 교환 학생 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이제 벌써 대학교를 졸업한지 2년이 확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아직 나는 한국에 머무르고 있다.
오늘 오후 2:40에 거의 만 3년 전에 도착했던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돌아갈거다. “출국”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귀국”이라고 하는 게 더 마땅한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1993년에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
두 살이었을 때 아버지가 박사 학위 공부 관계로 아빠를 따라 영국으로 갔다. 아버님이 미국에서 직장을 갖게 돼서 결국 미국에서 미시간 주립대학교 3학년 까지 거기에서 자랐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하기 직전에 초록색 한국 여권이 흰머리 독수리로 조각된 미국 여권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내 이름을 더 미국스러운 느낌인 “Derek”으로 공식적으로 정해졌다. 그 당시에는 내가 더 미국스러운 이름을 원했던 핑계로 이름을 바꾸고 싶다고 했지만, 실제 이유는 선생님들, 의사들, 학우들 등등 항상 한국어 로마자 이름 “Kunhee”를 항상 틀리게 쓰고 발음하는 것을 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것이 때때로 몹시 부끄러웠다. 즉 나의 정체성에 대해서 많이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회의감이 나를 지금 스물 다섯의 나이에 나를 한국에 머물게 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실 미국에서 비교적 잘 성장했고 그 나라의 기회를 많이 향유할 수 있었다. 미국에 사는 현지인들과 잘 안 어울렸거나 인종차별을 많이 당했다는 이유로 이 글을 작성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나치게 나의 자랑을 하는 것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고등학교 시절 육상 110m 허들 종목에서 전미 선수권을 땄으며, 미국식 동창회 “홈커밍” (Homecoming) 행사에서 전교생 투표에 의거하여 두번이나 홈커밍 킹으로 뽑히는 영광을 누렸었다. 그리고 미시간 주립대학교에 가서 육상 선수 출전까지도 했었다. 내가 미국에서 자라면사 왕따였다고는 말할 근거는 전혀 없다.
하지만 그 모든 영광과 성취 가운데 내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나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감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실제 “나”는 “건희”인가? 아니면 “Derek”인가? 내가 미국 생활하면서 어떤 성공을 취득하면 나의 한국 사람인 부분이 점점 사라지는 것인가? 나의 사고방식이 다르고 성장 배경이 다른 탓에 나는 결국 “진정한” 한국 사람이 절대로 될 수 없는 것인가?
내가 한가지 발견한 것은, 외로움이란 게 주변에 사람들이 수적으로 많은가 적은가에 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다행히 늘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여기 한국에서 살면서 느꼈던 것 만큼 외로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막상 한국이라는 현실을 부딪혔기 때문이다. 일생 처음으로 첫 인상에 나는 “외국인”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과 외모가 똑같다.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즉 난생 처음으로 어느 집단에 속한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그 집단에 소속될 수 없다는 현실을 나는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겉으로는 한국 사람들 속에 있는 집단에 속해 있는 듯 했지만, 그와 동시에 그 집단에 나는 완전히 소속될 수 없었다.
내가 비록 내 주변 사람들과 똑같이 생겼고 첫눈에는 많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막상 입을 벌린 후 주변 사람들과 얘기하기 시작하면 나는 너무 다르게 보인다. 나의 말투 혹은 사고방식을 파악한 후 주변 사람들은 내가 토종 한국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한다. 영어로 표현해 “so close yet so far”란 느낌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의 표현을 빌면 한국은 내가 느끼기에 “가장 가깝고도 가장 먼” 나라였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이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자주 산책을 했다. 고민으로 가득찬 마음으로 서울의 여러 도로를 밟았다. 내가 여러번 밟았던 한강, 불광천, 안국 한옥마을 어디든 그 가운데에서 나는 비로소 스스로 깨달았다. 한국인 아니면 미국인. “Derek” 아니면 “건희”. 이런 양자택일은 고민하지 안 해도 된다.
내가 완전히 속하는 나라는 아마 없을 것이다.
저자가 수수께끼나 역설을 지을 때 좀 눈에 띄어야 많은 사람들이 이제 마땅히 수수께끼나 역설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나의 파라다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완전히 한국 사람이나 미국 사람이라고 안 해도 된다. 어느 한 가지 신분을 정의하는 것이 결국 헛수고가 될 수도 있다.
대략 여섯 시간 이후에 미국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창문 밖에서 한국이 점점 더 멀어지면서 지난 만 3년의 시간이 점점 현실보다 추억으로 변해 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마음속에서는 확실히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이제 미국 사회로 또 진입하면서 나의 존재의 근본은 여전히 한국인이라는 사실이다. 특색이 있는 뿐인다.
나의 모국은 여전히 한국이면서, 동시에 이 나라, “우리” 나라에서 나를 발견 했다: 한국 사람이나 미국 사람이 되기를 위해 노력하기 보다 내가 서 있는 틈 가운데에 그냥 서 있으면 된다. 그 사이에 담대히 서 있으면 되는 것이다.
Hi, Derek – wish I could read Korean…I assume that’s what I’m looking at.
Praying you are well; we are certainly praying for South Korea with the danger coming from the North!
God bless you & keep you safe,
Heather George
건희~~ 이 블로그를 소개해주고 너의 사색을 읽게 해주어 고마워 ㅎㅎ
너의 정체성이 한국에 있는가 미국에 있는가는 평생 네가 가지고 씨름해야할 문제일 수 있지만 한가지 분명한 정체성은 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과한 하나님 아버지의 가장 존귀한 아들이라는 것!! Bless you Kunhee:)